혐오에 편승해 기본적 책무를 져버린 서울시의회 책임자들은
책임을 지고, 서울 시민 모두에게 사과하라!
– 사상 최악의 <학교 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 제정 시도에 부쳐
서울시 의회 교육전문위원실은 서울시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제316회 임시회에서 의원발의될 조례안 2건에 대해 의견을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중 하나는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 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으로, 서울특별시 내에 소재한 모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의 학생과 교직원, 보호자를 포함한 모든 학교 구성원에게 적용되는 조례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위 조례의 적용을 받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조례안을 일선 학교에 공개하였는데, 공개된 내용을 보면 조례는 위 학교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성·생명윤리 규범’이라는 것을 제시하면서 성별 고정관념과 아동·청소년 및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노골적으로 담고 있었다.
조례에 담긴 ‘혼인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연합을 의미한다’,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개인의 불변적인 성별을 의미하고, 이는 생식기와 성염색체에 의해서만 객관적으로 결정된다’, ‘아동·청소년에게 조기성애화, 성 정체성 혼란, HIV/AIDS 등 성매개감염병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적으로 충분히 안내하여야 한다’는 등의 내용은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침해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반인권 혐오집단이 늘상 주창하는 혐오표현이니 새롭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혐오표현이 서울시의회에 상정될 조례안으로 구성되고, 서울시의회 교육전문위원실을 통하여 서울시 교육청에 관련 의견을 요구하는 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해서는 신선한 충격을 금할 수가 없다.
조례는 ‘성교육의 목적은 절제’, ‘생물학적 성별에 관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거나, ‘조기성애화’라는 사회적으로나 학술적으로도 유래 없는 용어를 사용해, 시대착오적이고 트랜스/젠더퀴어 등 성소수자를 배제하며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따라서 조례안이 일선 학교에 공개된 직후부터 교사를 비롯한 시민사회 각계에서 조례안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울시의회에 대한 사실확인 요청이 이어졌다. 서울시의회 교육전문위원실 관계자는 ‘의원이 발의한 조례안이 아니라 어떤 외부단체가 만든 것이며, 발의 의원 등은 전혀 결정된 것이 아니’라면서 ‘민원인 보호 차원에서 단체명을 밝힐 수는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조례안은 성·생명윤리 규범을 위반하는 행위로 ‘성·생명윤리에 관한 신실한 종교적 신앙과 도덕적 신념을 이유로’ 학교 교육활동을 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가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는 행위’를 가장 먼저 금지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성·생명윤리 관련 표현을 금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의 성과 생명에 대한 규범을 다룬다는 조례에서 제일 우선하고 있는 것이, ‘학교 구성원이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니 어딘가 미심쩍다. 한편 작년 11월 서울시의회에 주민청구조례로 제출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은 그 청구사유로 “학생인권조례는 소위 혐오적 표현을 금지하며 종교와 양심에 근거한 표현조차 혐오표현으로 간주해 금지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학교와 교사가 학생에 대해 동성애, 성전환, 혼전 성행위(임신과 출산 관련) 등에 대한 보건적, 윤리적 유해성을 교육하거나 올바른 성윤리 교육을 하는 것이 차별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적은 바 있다. 결국, ‘신실한 종교적 신앙과 도덕적 신념’을 가지고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사실상 제약 없이 하겠다는 사람들, 바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주민조례청구로 제출한 집단과 동일한 성소수자 혐오집단으로부터 해당 조례안이 제출된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
서울시의회가 교육청에 해당 조례안에 대한 공문을 보낸 2023. 1. 25. 은 파리다 샤히드 유엔 교육권 특별보고관 등 유엔인권이사회 4개 특별절차가 공동으로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서울시·충청남도의 학생인권조례등 폐지 움직임과 교육부의 2022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 국제인권기준, 특히 차별금지에 위배되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에 대한 보호를 축소하려는 시도를 지적한 날이다. 국제사회가 한국 사회의 인권상황에 주목하고 있는 이 시기에,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혐오로 점철된 최악의 조례안이 서울시의회의 공식문서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해당 조례안과 관련해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의회 교육전문위원실은 외부 민간단체 민원이 들어오면 교육청에 검토를 요청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인 듯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언론 취재에 따르면 외부 민원으로 제안된 모든 조례안에 대해 소관 상임위 논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교육청 의견 수렴을 요청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게다가 실제 교육전문위원실이 교육청에 보낸 공문에는 ‘제316회 임시회 의원발의 조례안’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첨부한 의견서 양식에는 제정안에 대한 수정안과 그 사유만을 제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애초에 조례안에 대한 반대 입장은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조례안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어떠한 제동 없이 2월 임시회에 발의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반인권적인 조례를 그대로 받아 지금의 사태를 만든 서울시의회 교육전문위원실은 거짓 해명을 철회하고, 이 조례안이 어떤 집단으로부터 제안되었고 교육위원회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의원 발의 예정’ 조례안으로 교육청에 의견서 제출이 요청된 것인지 지금 당장 밝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방공무원법」 등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위반이 있다면 합당한 처분을 받아야할 것이다. 또한 만약 그것을 지시하고 주도한 사람이 서울시의회 의원이라면 해당 의원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지방자치법」 및 「서울특별시의회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 조례」에 따라 서울시의회 의원은 ‘시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주민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공익우선의 정신으로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직무와 관련하여 부정한 이득을 도모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아니하’여야 하며, ‘시민의 대변자로서 모든 공사행위에 관하여 주민에게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 성·생명 윤리가 아니라 지방공무원과 지방의회의원의 윤리강령 위반이 문제다. 반인권, 위헌적인 조례안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어쩌면 혐오에 편승하려는 의도로 제정하고자한 서울시의회 의원은 이번 사태에 윤리강령 위반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 또한 서울시의회 교육전문위원실은 2023년에 한국 역사상 최악의 조례안을 필터 없이 맞닥뜨리게 된 서울시민 모두에게 사과하라. 우리는 지방의회가 다시는 혐오를 대변하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주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