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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활동] 2023 EU-대만 성평등 포럼 참가 후기

안녕하세요.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에서 활동하는 정성조입니다. 7월 5일과 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2023 EU-대만 성평등 포럼”에 다녀왔어요. 저는 한국 성소수자의 전반적인 상황과 정책적 필요성을 공유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참가하게 되었어요.
대만 행정원이 주최하는 국제 성평등 포럼
유럽연합(EU)과 대만은 2019년 “유럽연합과 대만의 성평등 협력과 교육 체계에 관한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발족했어요. 같은 해에는 “2019 EU-대만 LGBTI 인권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죠. 2019년은 대만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해였잖아요. 컨퍼런스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혼인평등과 성소수자 권리 보장이었어요. 아쉽게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컨퍼런스를 이어오지 못 하다가 작년부터 행사가 재개되었어요. 작년 컨퍼런스의 주제는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의 삶, 그리고 성소수자의 권리”였다고 하네요. 올해 주제는 “성평등을 증진하기”예요.
2023 EU-대만 성평등 포럼에 참여한 주요 연사 단체사진. 첫 번째 줄 좌측에서 여섯 번째 자리에 천젠런 대만 행정원장이 배석해 있다. (사진제공: 대만 행정원)
이번 EU-대만 성평등 포럼은 팬데믹 기간과 이후에 나타난 젠더 불평등과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 성소수자의 삶의 조건 등을 폭넓게 다루었어요.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온 활동가, 연구자, 정책 담당자가 여성과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 정책적 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뜻깊은 자리였지요. 특히 이번 포럼은 대만 행정원의 의뢰로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彩虹平權大平台)이 수행한 “대만 LGBTI 성소수자 생활실태조사”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기도 했어요. 행정원이 실시한 성소수자 대상의 첫 실태조사로 1만 3천여 명이 넘는 성소수자가 조사에 참여했다고 해요. 엄청나죠? 참, 저는 다움에서 실시한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참석했어요.
사실 저는 한국 성소수자 인권 실태를 간단히 발표한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했어요. 맛있는 대만 음식을 이것저것 먹어보겠다는 기대와 함께요. 그런데 포럼장에 도착해보니 포럼의 규모가 제가 생각한 것을 훨씬 넘어선 거 있죠. 특히 첫 날은 천젠런(陳建仁) 행정원장이 참석해 방송 카메라로 북새통을 이뤘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고위 정치인이 성평등 행사에 참석한 거였죠. 천젠런 행정원장은 개회사에서 성평등을 정책적으로 확고하게 추진하는 한편 성폭력 범죄에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는 각오를 밝혔어요. 최근 대만에서는 집권 정당인 민주진보당 소속 정치인은 물론 국민당과 사회 각계에서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있어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미투’의 목소리를 낸 이들에 지지를 표하며“우리 사회 전체가 다시 배우고 자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고 개혁을 약속하기도 했지요. 이번 EU-대만 성평등 포럼은 대만 행정부에게 꽤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였던 셈이죠.
천젠런 대만 행정원장은 이날 기조 연설에서 코로나 이후 젠더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성폭력 범죄에 단호히 대응할 것을 다짐했다. (사진제공: 대만 행정원)
대만 성소수자의 삶: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이번 포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만 LGBTI 생활실태조사”의 결과 발표가 예정된 세션이었어요.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에도 2019년 대만 동성혼 법제화는 중요하고 뜻깊은 소식이었지요. 동성혼 법제화가 이루어지고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대만의 성소수자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우선 2019년 이후 현재까지 대만에서 결혼한 동성커플은 총 10,966쌍이라고 해요. 첫 해에만 거의 3천 커플이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맺었죠. 이는 이성애자를 포함한 전체 혼인 건수에 비추어 볼 때 약 2%정도에 해당한다고 해요. 아, 참고로 이 중에서 이혼한 커플은 1,880쌍이라고 하네요.
“대만 LGBTI 생활실태조사”는 2022년 10월부터 약 두 달 간 온라인으로 실시되었어요. 스스로 LGBTI로 정체화한 대만인이 대상인데, 특히 10대, 중장년층, 장애인, 원주민에 대한 추가적인 관심을 두고 조사를 수행했다고 해요. 유효응답수만 1만 3천 명이 넘는 대규모 조사인 만큼 매우 중요한 연구가 아닐 수 없어요. 대만 행정원이 실시한 최초의 실태조사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죠. 한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와 2020년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어요. 다만 그밖의 정부 부처는 성소수자 관련 통계를 생산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죠.
“대만 LGBTI 생활실태조사”에는 재미있는 결과가 많았지만 전체를 다 소개드리기는 어려우니 몇 가지 흥미로웠던 지점을 말씀드리려고 해요. 대만은 2005년부터 학교 교과과정에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하고 성소수자 이슈를 포함했어요. 대만 동성혼 법제화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학교 성평등 교육을 꼽는 이들도 많죠. 이러한 교육은 실제로 어땠을까요? 초기에 성평등 교육을 받았던 응답자(현재 나이 20~29세) 가운데 28.6%가 성소수자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반면 25.6%는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 했다고 답했어요. 응답자의 28.9%는 성소수자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와 부정적인 묘사가 둘 다 있었다고 답했죠. 반면 현재 학교 교육 과정 중에 있는 응답자(현재 나이 15~19세)에서는 40.4%가 성소수자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했고, 교육을 받지 못 했다는 응답은 17.6%로 나타났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와 부정적인 묘사가 모두 있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33.3%로 다소 늘었네요. 전반적으로 개선되는 모양새지만 여전히 성평등 교육에서조차 편견이나 왜곡된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어요.
대만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의 덩주위안(鄧筑媛) 활동가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만 행정원)
지난 1년간 대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적대감이 어떻게 변화한 것 같냐는 질문 또한 흥미로웠어요. 전체 응답자의 52%는 이러한 상황이 나아졌다고 답했어요. 나빠졌다는 응답은 13%였죠. 개선의 주된 요인으로는 법과 정책의 변화, 일상 속 성소수자의 커밍아웃, 유명인사의 공개적인 지지가 꼽혔고요. 특히 대만 정부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0점부터 100점까지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전체 응답자 평균 점수가 66.55점으로 나타난 게 인상적이었어요. 한국 정부는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실 사회적 차별과 적대감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느끼는지 묻는 질문은 다움의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에도 있어요. 다움 조사에서는 개선되었다는 응답이 32.4%, 나빠졌다는 응답이 35.7%로 대만 조사의 결과와는 제법 차이가 나요.
그러나 대만이라고 모든 상황이 낙관적이기만 한 건 아니에요. 여전히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과 괴롭힘, 성폭력을 겪는 이들이 많아요. 특히 면전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부적절한 ‘농담’을 들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80%에 육박했죠. 응답자의 약 50%는 온라인 소셜 미디어에서 공격적이거나 위협적인 댓글이 달린 적이 있고, 약 20%는 위협적인 문자 메세지(DM 등)를 받았다고 답했어요. 특히 물리적 폭력이나 성폭력을 경험한 응답자 가운데 신고한 사람은 5%에 불과했어요. 이는 다움 조사와 거의 동일한 결과인데, 그 이유로는 “당국이 무언가 해줄 것 같지 않아서”(51%), “혐오적인 직원의 응대를 마주할까봐”(37%), “신고 기관을 믿을 수 없어서”(35%) 등이 제시됐어요. 즉,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다는 거였죠.
다움의 정성조 활동가가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만 행정원)
한국, 그리고 운동의 연결
이어지는 세션에서는 저는 한국 청년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발표했어요. 사실 한국에서 여러 차례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발표했던 자료였기에 발표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발표를 준비하려고 보니 한국의 맥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수치들이 어떻게 읽힐까 하는 걱정이 되었어요. 한국 성소수자가 처해 있는 다양한 맥락, 특히 법제도적인 변화의 지연과 사회적 인식의 급격한 개선 사이에 놓여있는 간극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발표를 준비했던 것 같아요. 같은 세션에서는 일본, 태국, 필리핀의 성소수자 인권 실태에 관한 발표도 함께 진행되었어요. 덕분에 (조금씩은 다르지만)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운동을 키워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다움 조사와 “대만 LGBTI 생활실태조사”는 몇 가지 동일한 문항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 지점이었어요. 발표에서는 간략하게 몇 가지 비교를 하는 정도로 그쳤지만, 향후 원자료를 바탕으로 대만과 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지형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 같아요. 가까운 이웃나라인 대만과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에 관한 다움의 후속 활동도 기대해주세요. 게데가 대만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현재 동성혼 법제화에 이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단계에 있거든요. 이와 관련해서 앞으로 한국과 대만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협력할 수 있는 계기가 더욱 많아질 것 같죠?
다움의 발표는 일본, 태국, 필리핀의 성소수자 실태에 관한 발표와 같은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배울 수 있었다. (사진제공: 대만 행정원)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체류 기간이 짧아 타이베이의 여러 성소수자 관련 명소를 다 찾아가보지는 못 했다는 거였어요. 그래도 6색 무지개 횡단보도는 놓칠 수 없었죠. 이 횡단보도는 시먼역 6번출구 앞에 설치되어 있어요. 동성혼이 법제화된 2019년 타이베이시가 여러 단체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상징하는 무지개 횡단보도를 설치한 거예요. 무지개 횡단보도가 설치된 시먼딩은 한국으로 치면 명동과도 같은 상업지구인데, 이 지역은 오랜 기간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상업시설이 집중적으로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역사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밖에도 대만 타이베이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시먼딩은 물론 228 평화공원이나 시청사 앞 레인보우 스타트라인을 꼭 들러보시기를 추천드려요. 참, 타이베이 프라이드가 매년 10월에 열린다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타이베이 시의 6색 무지개 횡단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