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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는 여전히 오고 있다. 조금 더딜지라도

새로운 시대는 여전히 오고 있다. 조금 더딜지라도

어제(10/26)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 처벌조항 사건을 선고했다. 추행죄는 네 번째 사건인데도 합헌 판단을 받았다. 처음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은 전파매개행위 처벌조항 또한 합헌으로 결정되었다.
이로서 한국은 오늘도 ‘소도미법’이 있는 국가가 되었다. 소도미법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는 정신병자이며, 정신병자는 가두거나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서구 국가에서 만들어진 동성애자 처벌 조항으로, 제국주의 시대와 세계대전 처리 과정에서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그 법을 만들어 수출한 나라들에서는 없앤 후 사과했고, 심지어 그 법을 공유하다 독립 후에도 남겨둔 피식민 국가에서도 폐지되어가는 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질긴 생명을 당분간 연장했다.
전파매개행위 처벌조항 또한 구시대의 산물이기는 마찬가지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전파를 억제하는 의료적인 방법이 전무했을 때 만들어진 조항이 아직도 HIV감염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바이러스 수치가 미검출이면 HIV는 전염되지 않는(U=U)다는 것은 합의된 과학적 상식이다. 백 번 양보하여 방법이 없을 때는 감염인의 권리를 크게 제약해서라도 전염을 억제할 필요성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방법도 달라져야만 한다. 그러나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전파매개행위 처벌조항 또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조항들은 성소수자와 HIV감염인들을 불안요소로 보아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면서까지 통제하려 드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법을 정당화한 결정으로는 놀랍게도, 법정의견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지키려 든다. 군형법 추행죄 합헌 결정에서 다섯 명의 헌법재판관들은 “자신이 언제든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다른 동료 군인의 성적 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우려”로부터 군인들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전파매개행위 합헌 결정에서는 장기간 바이러스가 미검출된 감염인임에도 “상대방을 바이러스에 감염시킬 수 있는 추상적 위험”이 있으니, 이로 인한 “적지 않은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상대방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꿈도 꾸지 마시라. 당신들은 그 무엇도 보호하지 못했다. 군대 내 여성의 성희롱 피해 경험 비율이 남성 대비 유의미하게 높음에도, “군대에서 남성과 여성이 폐쇄적인 단체생활을 하여야 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으니 남성 간 성행위만 통제하면 된다는 관점으로 대체 누구를 보호하겠는가. 과학적 근거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감염인들을 죽이는 제1의 원인인데, 그 두려움과 공포를 긍정하여 누구를 보호할 수 있겠는가.
행간에 흐르는 절절한 사명감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결정문은 가치의 수호가 아닌, 도태되어 가는 후진적 인식의 잔해에 불과하다. 이 사건들에서 주목할 만한 의견은 법정의견이 아닌 반대의견에 있다. 전파매개행위 처벌조항 사건에서 반대의견을 낸 다섯 헌법재판관들은 최신의 국제 HIV 정책을 참고하여 감염인이 치료에 성실히 응하며 더 건강할 삶을 살 수 있는 방법까지 위헌심사에 고려한다. 추행죄 사건에서는 세 명의 헌법재판관이 추행죄 헌법재판 사상 처음으로 평등권 위반에도 해당한다는 의견을 냈다. 똑같이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더라도 상대방이 이성이면 무죄, 동성이면 유죄가 되는 법이다. 반대의견은 이 다른 결과가 성별에 따른 차별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법정의견은 최신의 견해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과거의 잘못된 지식, 악마화된 대상에 대한 추상적 공포로부터 기인한 편견과 혐오를 승인했지만 무언가를 지켜낸 의미있는 결정으로 남지 못할 것이다. 이 당면한 변화와 진보를 멈춰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거듭할수록 진전하고 있는 추행죄 반대의견이 보여주듯, 차별과 혐오가 설 자리 없는 새로운 시대는 착실히 다가오고 있다. 고통스러울만치 더디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2023년 10월 27일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textsf {2023년 10월 27일} \\ \textsf {\bf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