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샵 장소에 붙였던 포스터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퀴어한 워크샵
열성을 다해 나에게 이 워크샵을 홍보했던 친구의 권유로 이번 워크샵에 참가하게 되었다. 비록 이전에도 인터넷 등으로 관련 정보를 접하면서 퀴어 친구들을 사귀기는 했지만, 막 대학교에 입학해 퀴어 동아리에 가입한지 반 년 쯤 된 나에게 오프라인에서 직접 성소수자 관련 활동에 참가하는 것은 여전히 낯선 경험이었다. 퀴어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난 친구들이 이 워크샵에 많이 참여한다고 하길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대하고 온 것도 있었지만, 역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 성소수자로서 한국 사회 속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더 컸다.
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가하고자 했기 때문에 첫 번째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워크샵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 후에는 같은 학교 모임 친구들,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맛있는 비건 간식도 먹으며. 정말 맛있었다…!) 서울 퀴어 퍼레이드 이후에는 퀴어든 아니든 어쨌든 친구 한 명 없는 본가에서 지내느라 두 달 반 동안 퀴어 젊은이들을 만난 경험이라고는 사람 없는 부산 레즈비언 클럽에 간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첫 프로그램으로 '동성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책 프로그램을 들었다. 연애나 동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에게 크게 다가오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시스젠더 남성과 여성 간의 결혼만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나의 위치를 탐색하면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그 방법이 나에게 결혼이 될지, 혹은 다른 모습의 가족 형태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연애와 커밍아웃 과정에서 있었던 해프닝 등도 이야기해주신 패널분들의 입담 덕분에 프로그램을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하시던데 어떻게 하면 그 말을 따를 수 있을까요? 흑흑.
다음 프로그램으로 ‘성소수자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사람책 프로그램을 들었다. 아직 1학년인데다가 전공도 없기에 직장을 생각하기에는 많이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안 듣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듣기로 했다. 나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고, 비용과 시기만 갖춰진다면 바로 진행할 의향이 있는 탑수술을 제외한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호르몬, 성기 수술, 정정 등)은 아직 고려 중이지만, 그래도 기회가 왔을 때 트랜스젠더로서의 사회 생활에 대해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트랜스 남성인 블레인 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주민등록번호상 성별과 외형상 성별의 불일치가 국내 기업 취업에 큰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 취직을 고려하셨다는 것은 정말 새겨들을만 했다. 주민등록번호의 성별 표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이 취업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계 기업에 도전한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국계 기업 취업이나 사회 생활에 관한 질문이 있으면 연락해도 된다는 말에 명함도 받아 왔다.
다음은 박한희 변호사님이 진행하신 ‘성소수자 의제 한 큐에 알아보기’를 들었다. 성소수자 의제에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방대한 정보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봐야 하는지 알지 못해 답답함을 느꼈는데, 이 프로그램이 관련 의제를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신청했다. 동성결혼 법제화나 주민등록번호 난수화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효력이 있는지, 생활동반자법과 동성결혼이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등 모호하게 알고만 있던 지식들을 정확하게 배울 수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콕 찝어 질문한 다른 참가자들 덕분에 더욱 많은 것들을 배워갈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 레크레이션에 참가했다. 낯이 익은 사회자가 열심히 진행을 한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누가 미카의 그레이스 켈리를 노래 제목 맞추기 게임에 넣었는가. 덕분에 100명 앞에서 괴성을 질러버렸다.
예상치 못한 투숙객들의 존재로 인해 친교의 밤은 살짝 지체되었지만 그래도 처음 만난 분들과 원래 알던 친구들과 밤새 떠들고 놀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MT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남자 여자 갈라서 시스헤테로 중심적인 대화만 하던 과 MT에서 논바이너리 바이섹슈얼인 나는 언제나 외로웠고 반 쪽 짜리처럼 느껴졌는데, 이번 MT는 과 MT와는 너무나도 달라서 정말 좋았다. 그렇지만 과음을 한 것 같다. 같은 방에 있던 분들께 추태를 부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나의 와인 따개도 행방불명 되었지만 어쨌든 즐거웠다. 그래도 와인 따개를 주우신 분이 계시다면 저에게 전달해주세요.
작성: 제시 (성균관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퀴어홀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