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자녀 있는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불허의 위법성을 확인한 대법원 결정을 환영한다
오늘(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2020스616). 2011년에 미성년 자녀가 없을 것을 성별정정의 사전요건으로 허용한 이래 11년만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대법원의 이번 결정을 환영하며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체성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한 더 많은 논의를 촉구한다.
이 사건의 신청인은 미성년 자녀를 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2019년 서울가정법원에 성별정정을 신청했으나 1, 2심 모두 기각되었다. 법원의 기각 이유는 미성년 자녀를 둔 경우 성별정정을 허용하면 자녀의 복리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2011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결정(2009스42)에서 판시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번 결정에서 대법원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라 진정한 성을 법적으로 인정받고 확인받을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도출되는 기본적 권리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면서 트랜스젠더인 부모의 성별정정이 자녀의 복리에 해가 된다고 일률적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성별정정을 함으로써 자녀의 복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판단하였다. 또한 성별정정 전후로도 트랜스젠더 부모와 그 자녀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고 따라서 트랜스젠더 역시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아야 한다고도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이러한 구체적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고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청인의 성별정정을 기각한 원심 결정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이번 대법원 결정은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권리로서 확인하였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크다. 다만 그럼에도 미성년 자녀 기준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판단의 여지를 남긴 것은 아쉬운 일이다. 유엔 등 국제인권규범과 성별정정의 권리를 확인하면서 자기결정에 따라 어떠한 강제적 요건 없이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몰타 등 여러 외국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법률도 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번 대법원 결정의 취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조속히 신청인의 성별정정을 허가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번 결정을 계기로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에 대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논의가 이루어질 것을 촉구한다.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성별정정을 용이하게 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그럼에도 국회와 정부는 이 문제를 법원의 역할로만 떠넘긴 채 제대로 된 어떠한 논의도 하고 있지 않다. 이는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책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대법원이 확인했듯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인격을 발전하고 이를 법 앞에 인정받는 것은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오늘 결정을 환영하며, 이러한 권리가 충분히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에서 더 이상 자신의 책무를 미루지 말고 자기결정에 기반한 성별정정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